글 수 142
똑같은 교사들인데도 여자가 교사인 경우는 남편의 능력에 따라서인지 경제적인 모양새가 다르다.
우리 교사중에 나말고 한명 더 있는 한인교사가 혹 우리학교에서 가장 부자는 아닐까하는 생각이
들 정도이다. 풀장이 달리고도 명화로 가득 찬 약 1500평 짜리(1&1/4 acre) 집 말고도 건물(Building)이 있다니 하는 이야기이다. 원래는 약사였다가 부동산에도 관여했다 나보다 더 늦게 교사를 시작한 이가 올해로 정년퇴직을 했다. 조금 더 해야 벌점없는 연금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나이든 그를 학교가 좀 괴롭힌 까닭일게다. 작년에 Excess를 당한 후 갈 데 없어 본교로 돌아오게 된 그녀에게 결석한 교사의 대타로 들어가게 했는데 워낙 힘든 반을 많이 맡았기에 학생들에게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. 건물의 세만 나와도 걱정이 있겠는가? 그러니 일이 하고 싶어 일을 계속하던 그가 이제는 정력이 다 되었나보다.
몇몇 교사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그집에 가서 교사에게만 허용된 여름방학 시작을 자축하고는 했는데...
올해 초대를 받고는 이것으로 그 집을 가는 것도 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운했다. 아예 그 좋은곳에
사는 사람도 있는데 초대받은 우리는 도시 한복판에 살거나 아니면 독신이어서 아파트에 살기에 그 집에 초대받아
하루를 즐기는 것으로도 아주 고마워했다. 능력이 못 미쳐서 하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부자로 사는
것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나조차도 좋은 집에 살면서 남에게 이렇게 선심을 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고
까지 생각하게 되었다. 아니 실은 잘 모르겠다.
각자가 해온 음식과 선생님이 내놓은 푸짐한 음식을 즐긴 후 우리는 깨끗한 물이 담긴 풀장에 들어가 신나게
수영하고 배구를 했다. 나중에 온 볼가리아 교사 가족 셋은 전부 수영이 물개 수준이었고 아버지는 아들을,
아들은 아버지를 어깨에 올려놓고 공중으로 펄쩍 뛰었다가 물로 첨벙 다이빙을 하는 묘기까지 보여주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고 즐겁게 해 주었다. 평소에 얌전했던 앙뜨와네뜨는 유럽여자라서인지 아슬아슬한 초미니차림으로 동양인 남교사들 앞에 나타난 것부터가 신기했다. 학교에서만 보다가 온 가족을 다 보니 아주 화목한 가족같기에 이것저것 물으니 부부가 아주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서 조부모까지 서로 아는 사이라는 이야기에 더욱 환호했다. "누가 누구를 더 따라 다녔어요?" 하고 내가 물으니
"물론 우리남편이 나를 따라다녔지요. 하지만 암탉과 수탉 이야기를 아세요?
암탉은 언제나 수탉이 따라올 수 있는 거리만큼만 앞당겨 도망을 가요. 나도 저사람이
나를 따라오고 있나 안오나 늘 뒤를 쳐다보며 나를 잡을 수 있는 거리만큼만 도망다녔어요."해서
웃음을 자아냈다. 그녀의 말하는 표정이 퍽이나 귀여워서 남편이 6개월 밑이라는데도 앙뜨와네뜨가
훨씬 어려보였다. 온 가족이 해마다 3000불을 배행기값으로 지불하며 14년째 볼가리아를 방문해서
친인척을 만난다니 나보다 더 고국에 애착이 많은가보다.
우리가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선생님네 부부는 여늬해처럼 그릴이며 그릇들을 치우기에 바빴다.
수년동안 한 번도 그들이 풀장에 들어와 우리와 같이 노는 것을 보지 못했다. 그러니 마음이 좀 편치는 않다.
같이 놀고 치울 것은 좀 남겨두었다가 손님을 보내고 해도 그만 다음날 해도 그만일 터인데...
남편이 고무장갑을 끼고 수돗가에서 이것 저것 씻으시니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또 내가 치우겠다고
나서도 일 잘하는 그들이 일 못하는 내게 일을 맡길 것 같지는 않고...
가라오깨를 내어놓고 한국노래, 영어노래, 중국노래까지 들어야하니 바쁘다. 선생님 내외는 역시 노래도
합해서 세 곡 부르고 열심히 일만 한다. 나는 놀면서도 바늘 방석이다. 친구가 그랬지. 친구의 사촌동생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그 동창이 너무 잘 산다고... 그런데 조카인 그 집에 가보고 친구의 엄마가 놀랐단다. 동창의
남편이 대학 교수인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집을 치우더라고... 역시 그런 큰 집을 지니고 사는
사람은 부지런하더라고.
큰 집을 제공하려면 청소하기도 그만큼 힘들터이니 고맙고 고맙지만 우리와 같이 조금 더 많이 놀아주셨더라면
노는 사람들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 같다.
우리 교사중에 나말고 한명 더 있는 한인교사가 혹 우리학교에서 가장 부자는 아닐까하는 생각이
들 정도이다. 풀장이 달리고도 명화로 가득 찬 약 1500평 짜리(1&1/4 acre) 집 말고도 건물(Building)이 있다니 하는 이야기이다. 원래는 약사였다가 부동산에도 관여했다 나보다 더 늦게 교사를 시작한 이가 올해로 정년퇴직을 했다. 조금 더 해야 벌점없는 연금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나이든 그를 학교가 좀 괴롭힌 까닭일게다. 작년에 Excess를 당한 후 갈 데 없어 본교로 돌아오게 된 그녀에게 결석한 교사의 대타로 들어가게 했는데 워낙 힘든 반을 많이 맡았기에 학생들에게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. 건물의 세만 나와도 걱정이 있겠는가? 그러니 일이 하고 싶어 일을 계속하던 그가 이제는 정력이 다 되었나보다.
몇몇 교사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그집에 가서 교사에게만 허용된 여름방학 시작을 자축하고는 했는데...
올해 초대를 받고는 이것으로 그 집을 가는 것도 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운했다. 아예 그 좋은곳에
사는 사람도 있는데 초대받은 우리는 도시 한복판에 살거나 아니면 독신이어서 아파트에 살기에 그 집에 초대받아
하루를 즐기는 것으로도 아주 고마워했다. 능력이 못 미쳐서 하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부자로 사는
것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나조차도 좋은 집에 살면서 남에게 이렇게 선심을 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고
까지 생각하게 되었다. 아니 실은 잘 모르겠다.
각자가 해온 음식과 선생님이 내놓은 푸짐한 음식을 즐긴 후 우리는 깨끗한 물이 담긴 풀장에 들어가 신나게
수영하고 배구를 했다. 나중에 온 볼가리아 교사 가족 셋은 전부 수영이 물개 수준이었고 아버지는 아들을,
아들은 아버지를 어깨에 올려놓고 공중으로 펄쩍 뛰었다가 물로 첨벙 다이빙을 하는 묘기까지 보여주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고 즐겁게 해 주었다. 평소에 얌전했던 앙뜨와네뜨는 유럽여자라서인지 아슬아슬한 초미니차림으로 동양인 남교사들 앞에 나타난 것부터가 신기했다. 학교에서만 보다가 온 가족을 다 보니 아주 화목한 가족같기에 이것저것 물으니 부부가 아주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서 조부모까지 서로 아는 사이라는 이야기에 더욱 환호했다. "누가 누구를 더 따라 다녔어요?" 하고 내가 물으니
"물론 우리남편이 나를 따라다녔지요. 하지만 암탉과 수탉 이야기를 아세요?
암탉은 언제나 수탉이 따라올 수 있는 거리만큼만 앞당겨 도망을 가요. 나도 저사람이
나를 따라오고 있나 안오나 늘 뒤를 쳐다보며 나를 잡을 수 있는 거리만큼만 도망다녔어요."해서
웃음을 자아냈다. 그녀의 말하는 표정이 퍽이나 귀여워서 남편이 6개월 밑이라는데도 앙뜨와네뜨가
훨씬 어려보였다. 온 가족이 해마다 3000불을 배행기값으로 지불하며 14년째 볼가리아를 방문해서
친인척을 만난다니 나보다 더 고국에 애착이 많은가보다.
우리가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선생님네 부부는 여늬해처럼 그릴이며 그릇들을 치우기에 바빴다.
수년동안 한 번도 그들이 풀장에 들어와 우리와 같이 노는 것을 보지 못했다. 그러니 마음이 좀 편치는 않다.
같이 놀고 치울 것은 좀 남겨두었다가 손님을 보내고 해도 그만 다음날 해도 그만일 터인데...
남편이 고무장갑을 끼고 수돗가에서 이것 저것 씻으시니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또 내가 치우겠다고
나서도 일 잘하는 그들이 일 못하는 내게 일을 맡길 것 같지는 않고...
가라오깨를 내어놓고 한국노래, 영어노래, 중국노래까지 들어야하니 바쁘다. 선생님 내외는 역시 노래도
합해서 세 곡 부르고 열심히 일만 한다. 나는 놀면서도 바늘 방석이다. 친구가 그랬지. 친구의 사촌동생이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그 동창이 너무 잘 산다고... 그런데 조카인 그 집에 가보고 친구의 엄마가 놀랐단다. 동창의
남편이 대학 교수인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집을 치우더라고... 역시 그런 큰 집을 지니고 사는
사람은 부지런하더라고.
큰 집을 제공하려면 청소하기도 그만큼 힘들터이니 고맙고 고맙지만 우리와 같이 조금 더 많이 놀아주셨더라면
노는 사람들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 같다.